밤의 안내판에서 그날의 그림으로
이 서비스의 이름은 처음부터 그날의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이 글은 이름을 찾아간 이야기입니다.
밤의 이정표, 그리고 밤의 안내판
맨 처음 파일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카드형 만세력"이라는 제목을 단 계산 화면이었고, 단추에는 "내 운명 확인하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따로 만든 첫 인트로 화면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밤의 이정표", 영문으로는 Your Celestial Signpost. 인트로와 만세력을 한 화면에 합치면서 이름은 "밤의 안내판"이 되었고, 영문은 The Celestial Signpost로 남았습니다.


진파랑 밤하늘 같은 우주 속에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 그 좌표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쓸모 있는 안내판이 되기를 바라며 붙인 이름입니다. 그 뒤로 만드는 내내, 설계 문서도 코드 파일 이름도 모두 밤의 안내판으로 시작했습니다.
클라우드플레어에 올리고 나니, 실제 주소를 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처음 붙잡은 질문들은 이랬습니다. 이 지구상에 한 사람의 생명이 시작된 "사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happening과 event는 어떻게 다른가. fate와 destiny는 실제 사용자들의 문화권에서 어떤 감정으로 읽히는가. 천문학이 연상되면 좋겠고, 점성술과는 거리를 두고 싶은데, 사주 명리학은 어느 쪽에 가깝게 들릴까.
The Path of Fate, Cosmic Sequence, The Celestial Log를 따로 메모해 두었고, BirthCode.com과 FateCode.com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단점이 적은 이름
BirthCode.com은 이미 팔린 주소였고, 되파는 시장에 꽤 비싼 값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보다 걸린 건 code라는 낱말이었습니다. 숨겨진 답을 해독해 준다는 느낌이라, 재물운이나 소원 성취를 풀어 준다는 가벼운 운세 상품들 곁에 놓이기 쉬웠습니다. 겁주는 말 대신 자연의 이치로 담담하게 읽겠다는 처음 생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낱말마다 다른 그림자가 따라왔습니다. 영미권 인문·예술 쪽에서는 세련되게 들리는 grain은 동북아에서는 식량 유통 회사처럼 들렸습니다. fate와 destiny는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옛날식 점술의 냄새가 났고, 이미 거대한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그 낱말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lifepath는 진로 상담이나 보험사 같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금융 상품의 등록 상표였습니다. "바로 이거다" 하고 도메인을 검색할 때마다, 그 낱말이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얼마나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를 먼저 걸러야 했습니다.
사주를 그림으로
다시 처음 생각으로 돌아갔습니다. 진입 장벽은 있지만 관심은 가는 사주를, 그림으로 느끼게 하고 싶다. 그래서 두 음절 안에 생년 정보와 이미지를 함께 담아 보려 했습니다. time, date, hour, root, natal, chrono, birth에 hue, tint, color, glow, ink, print, art, graph를 이리저리 붙여 보았습니다.
그중 birthgraph.art가 비어 있었습니다. 점성술의 natal chart가 떠올라 피한답시고 birth로 바꿨는데, 영어에서 birth chart가 바로 점성술의 그 낱말이었습니다. 오십보백보였습니다. 게다가 graph를 'ph'로 읽으면서 손은 계속 'gh'를 치고 있었고, 눈도 속았습니다.
hourgrain은 hour의 h가 묵음이라 our grain, 우리의 결로 들리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유기농 곡물 회사, 내지는 유기농 전문 식료품 가게 같은 느낌이 먼저 들 것 같았습니다. 결이라는 낱말은 이름이 아니라 화면 속 "타고난 결"에 남겨 두었습니다.
그렇게 fatecode에서 grainpath를 거쳐 daygraph까지 왔습니다. 손은 물에 불어 가는데, 목걸이로 만들 색이 예쁜 돌이나 조개껍데기를 찾아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름에서 운명이 빠졌고, The Celestial Signpost의 celestial도 점성술의 어휘라 함께 내려놓았습니다. "사주그림"은 이름이 아니라 부제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날의 그림
마지막 후보는 daycolor였습니다. 처음 생각이 색을 넣듯 직관적인 그림으로 느끼게 하자는 것이었으니, color가 그 출발점을 가리킵니다. daycolor.art는 초기 등록 가격은 반가웠지만, 갱신할 때 얼마나 늘어날지가 부담되었습니다. 하이픈을 넣은 주소는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탈이 매우 크다고, AI가 내게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반대하더군요.
그러다 daycolor.day를 찾았습니다. 갱신해도 값이 그대로였고, 하이픈도 복수형도 없었습니다. 날마다 바뀌는 오늘의 괘를 보러 날씨 앱처럼 다시 여는 서비스이니, 끝의 day가 이름을 한 번 더 부각시켜 줄 거야 하고 서로 타협하며 그 주소를 사게 되었습니다.
주소를 산 뒤에야 첫 화면의 "밤의 안내판"을 내렸습니다. 지금 첫 화면에는 "그날의 그림 · 당신의 사주그림"이, 영문 화면에는 "Color of Your Day · The day you began, in color"가 적혀 있습니다.
이름의 무게중심이 "운명"에서 "그날의 색채와 그림"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