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고 여린 푸른 점 위에서
그림 한 장과 문장 몇 줄을 어떤 순서로, 어떤 화면에 담을지도 오래 고민했습니다. 이 글은 그 화면 이야기입니다.
첫 화면은 우주로 열었습니다
생일을 묻기 전에 먼저 보여 주고 싶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대뜸 "가입은 없다는데 내 생일 정보는 왜?" 하고 느끼지 않게, 생일이 이 우주에서 어떤 의미일지 상상해 보자는 의미였습니다. 처음 구상 메모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지구가 태양과 함께 은하를 도는 어느 지점, 태양 주변을 돌던 한 때, 달이 지구 주위를 돌던 어느 날, 태양을 두고 자전하던 한 순간."
년월일시가 곧 우주 공간에서의 어떤 좌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연도를 넣으면 태양계가 가까이 다가오고, 월을 넣으면 지구의 공전이, 날을 넣으면 달이, 시를 넣으면 지구의 자전이 멈추도록 했습니다. 정밀한 입체 그림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림을 가위로 오려 아이들에게 "자, 이런 식으로 돌고 있는 거야. 자세한 건 상상에 맡길게" 하고 설명하듯, 진파랑 크래프트지에 분필로 그린 스케치 같은 궤도면 충분했습니다.

그 위로 이런 문장들이 흐릅니다.
"빛이 도달하는 끝조차 알 수 없는 광활한 우주 / 여기, 작고 여린 푸른 점 위에서 벌어지는 / 결코 작지 않은 한 사건 / 어쩌면 당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이 천체들을 그림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칠판에 분필로 그린 듯한 지구와 달은 마음에 들었지만, 애니메이션을 입히자 본 코드보다 몇 배나 큰 용량을 잡아먹었습니다. 애초에 어떤 낮은 성능의 기기에서도, 유려하진 않아도 칠판에 그린 도식처럼 부담 없이 열리도록 1MB 이하의 HTML을 구상했기 때문에 한참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지금 첫 화면의 해와 지구와 달은 그림 파일이 아니라 코드로 그린 선입니다. 첫 화면 전체가 약 560KB입니다.


대기권을 지나 땅으로
갈림길 다음에는 네 가지 모드가 있습니다. 산수화, 민화, 판화, 청사진. 처음에는 화풍 넷을 나란히 놓은 메뉴처럼 보였지만, 다시 읽어 보니 네 개의 화풍이 아니라 하나의 여정이었습니다.
산수화는 우주에서 내려다본 나, 자연 풍경 속 물상입니다. 민화는 땅 위에서 올려다본 나, 띠의 수호신이 나를 알아보는 장면입니다. 판화는 나는 무엇을 품고 있는지 묻는 자리, 청사진은 그 대답이 현실의 좌표 위에 내려앉는 자리입니다. 관찰, 인식, 선택, 투사.
그래서 모드마다 배경색을 달리했습니다. 산수화는 첫 화면과 같은 진파랑에서 시작해 민화와 판화를 지나며 조금씩 옅어지고, 청사진에 이르면 연하늘을 거쳐 유백색에 닿습니다. 우주에서 작은 푸른 점에 눈길이 가고, 대기권을 지나 땅으로 내려오는 길입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를 뒤집었습니다. 판화 모드의 용신은 "이것을 쓰세요"라는 처방이 아니라 "당신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판화 그림은 용신에 따라 정해 보여 주되, 그 위에 찍을 낙관은 열 개의 천간 가운데 직접 고르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가지를 권해 드리려 했지만, 무엇을 품을지는 결국 본인의 뜻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다른 모드에서 한 마디를 직접 적어 그림에 얹듯, 판화에서는 고른 천간을 낙관처럼 화면 한 구석에 찍습니다. 그래야 찍히는 도장이 처방전의 직인이 아니라 나에 대한 대답이 됩니다. 청사진 모드는 스케치에서 청사진으로 가던 순서를 거꾸로, 청사진 먼저, 스케치 나중으로 바꿨습니다. 청사진은 이곳에 오는 본인이 선택한 의지, 세상에 오는 이유가 투사된 설계도를 상상한 것으로, 이 창을 닫고 아름다운 세상을 스케치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판화와 청사진 사이에는 한 번 더 오르내리는 장면을 그려 두었습니다. 도장을 찍어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품고 있던 것들이 별자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그 별점들이 다시 내려와 설계도의 선이 되는 장면입니다. 화면에는 지금도 "품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별자리가 되어 흩어집니다"라는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영상 구현 실력 탓에 그 장면은 순식간에 반짝하고 끝나, 흔한 프레젠테이션 화면 전환 가운데 하나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화면마다 지킨 몇 가지
말투를 정하기 전에 먼저 적어 둔 기조는 두 줄이었습니다.
작고 여린 푸른 점 위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에 관한 이야기 — 담담한 다큐 나레이션으로, 서비스 전반에 걸쳐.
내 지닌 그림 안에 횃불 하나 그려 넣고 우물 하나 새겨 두어 — 웃다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영화처럼.
모드마다 다른 말투는 큰 매력이지만, 거기에 몰입하다 보면 자칫 "응? 누구 얘기야?" 싶어질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칼 세이건의 어투를 따로 떼어 두지 않고, 어느 화면에서나 담담한 다큐 나레이션이 바탕에 깔리도록 했습니다.
여러 판을 거치며 버튼이 늘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산만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던 때에는 규칙을 하나 더했습니다. 꽉 채운 버튼은 화면마다 하나만 둡니다. 지금 가야 할 길이 하나로 보이도록요.
마지막 화면은 화면 밖으로
그림을 간직하는 마지막 화면에는 오래 다듬은 한 줄을 두었습니다. 처음에는 열두 띠 동물에 사람 옷을 입혀 보며 붙인 어르신 말투였습니다. "기념 사진으로나 간직하시게~" 지금은 조금 정중해져 "기념 사진으로 간직하세요"가 되었고, 간직하기 버튼에 마우스를 올리면 "지구 방문 기념"이라는 말이 뜹니다.
"활동하는 시간과 공간이 바뀌면, 먹는 것도 만나는 사람도 자연히 달라집니다. 그쯤 되면, 인생의 궤도가 달라졌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문구는 이 작고 여린 푸른 점 위의 한 구석에 낙서처럼 남긴 문장으로 마무리 짓고자 했던 문구입니다.
"사무치는 원망과 후회를 그럴듯한 핑계로 달래기도 하고, 그럴듯한 소리에 느닷없이 희망과 용기를 내보기도 하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