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는데, 이토록 돼지 목에 진주라니…
사주에는 글자를 자연의 사물로 바꿔 읽는 오랜 습관이 있습니다. 甲은 큰 나무, 丙은 태양, 癸는 비와 이슬, 하는 식입니다. 이것을 물상이라고 부릅니다. 이 서비스의 산수화는 그 물상을 태어난 날의 두 글자, 일주마다 그려 두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리려 하니 글자의 뜻과 그림이 생각처럼 맞물리지 않았습니다.
보석을 두른 돼지
신금(辛)은 흔히 보석으로 풀이합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이미지 생성 AI에게 어느 달의 신해 일주를 그려 달라고 했습니다. 오만 가지 보석을 몸에 덧붙인 돼지 한 마리가 떡하니 나왔습니다. 亥가 돼지띠의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기겁을 하고 신금에 집중하라 하니 돼지 모양 쇠붙이를 세워 놓았습니다. 돼지를 지워 달라니 장물도 아니고 야산에 보석함을 던져 놓았습니다. 다른 간지를 넣었더니 무슨 CSI 포스터도 아니고 사막 황무지에 보석함만 덩그러니 놓였습니다.


신금을 보석이라 부를 때부터 생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산수화의 신금은 열매와 곡식으로 바꿨습니다. 신사는 병화를 품은 붉은 홍시, 신해는 물가 나뭇가지의 오디, 신축은 노란 은행잎입니다. 보석은 판화 모드에서만 꺼냅니다. 같은 신해가 그쪽에서는 흑요석이 되고, 신축은 호박이 됩니다. 둘을 나눈 까닭은 하나였습니다. "어느 사이트에선 내가 보석이라던데, 여기는 전부 열매라고 하네" 하고 어느 한쪽으로 판단을 내려 버리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동물은 되도록 들이지 않았습니다
절에 가면 삼재라고 띠마다 염주라도 집어 들게 되듯, "나는 말인데, 용인데" 하는 띠 이야기는 혈액형처럼 기본 소양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서비스는 태어난 해의 띠가 아니라 태어난 날의 글자를 봅니다. 게다가 열두 동물은 문화권마다 받아들이는 결이 다릅니다. 쥐는 mouse인가 rat인가, 용을 괴물로 보는 동네와 천자의 상징으로 여기는 마을이 있고, 뱀은 아무리 지혜의 상징이라 한들 반기기 어렵습니다. 어설프게 그리면 거부감보다 먼저 서비스의 매력이 반감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산수화에는 동물을 거의 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외는 손에 꼽습니다. 그중 셋이 소입니다. 기축은 누렁이 황소(근면과 성실), 신축은 흰 소(깨달음을 찾아가는 심우도의 소), 계축은 검은 소(언 땅에서 봄을 기다리는 인내와 끈기)입니다. 세 마리는 털빛으로 갈립니다. 사실 계축의 검은 소는 계수를 어떻게 그릴지 궁리하다가 반쯤 농담으로 "그럼 여름 계축은 검은 소?!!!" 하고 던진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게 그대로 답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 바위 위의 흰 호랑이(경인), 큰 물결을 타는 고래(계해), 바위산의 독수리(경신)가 있습니다. 경신은 원래 강의 자료에 원숭이로 나오는데, 바위 위 원숭이는 떠오르는 기상이 직관적이지 않아 매서운 독수리로 바꿨습니다.



동물이 주인공인 자리는 따로 있습니다. 민화 모드에서는 열두 띠 동물이 사람 옷을 입고 섭니다. 일간과 일지의 관계에 따라 학자, 관료, 상인, 장군, 농부 차림이 됩니다. 처음 메모에 "비견 겁재가 많으면 농민이어야 하나... 쟁기나 얹어줘야겠군요"라고 적었는데, 정말로 연장을 어깨에 멘 개가 있습니다. 조건은 하나였습니다. 의인화하되 너무 만화 같지는 않게. 까다롭지만, 세련되게라고 포장하고 싶습니다.
같은 댐이 두 번 나오면
강의 자료를 정리해 보니 무자도 댐, 임술도 댐이었습니다. 무자에는 후버댐처럼 물을 거두어 둔 토목시설 자체를 주인공으로 세웠습니다. 임술은 겹치는 그림을 가려내 달라고 다른 AI에게 맡겼더니 "재물을 가둔 석조 창고"로 고쳐 왔습니다. 명리 해석으로는 그럴듯해도 그림으로는 밋밋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이 가둔 물, 산중턱의 칼데라 호수로 바꿨습니다. 사람이 막은 물과 산이 품은 물로 갈린 셈입니다.


나무도 비슷했습니다. 甲은 모두 큰 나무지만 아무 나무나 세우면 남극의 북극곰이나 북극의 펭귄 같아집니다. 그래서 수종을 사는 곳으로 나눴습니다. 마른 양지의 소나무(갑술, 갑신), 숲을 이루는 전나무(갑인), 물가의 버드나무(갑자)입니다. 午 위에 선 갑오는 소나무에 붉은빛을 입혀 적송으로 그렸습니다. 물을 머금은 바오밥이 뜻으로는 탐났지만, 정작 습한 곳에서는 못 산다니 내려놓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멀뚱한 것들
계수(癸)는 비, 이슬, 안개처럼 하늘의 물입니다. 김홍도풍 원경으로 그리면 아무리 공을 들여도 여름 단비나 겨울 눈이 정색하듯 멀뚱한 풍경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원경을 고집하지 않고 가까이 당겼습니다. 현대 수묵화의 근접 묘사입니다. 계미는 선인장 가시 끝의 물방울, 계유는 눈꽃 결정(여름이면 왕관 모양으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입니다. 계사는 햇빛을 받은 물방울을 과학적으로 풀어 무지개로 그렸습니다.
짝이 되는 모양
그림마다 구도의 기준도 하나 정했습니다. 열 천간을 선과 면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갑은 곧은 수직선, 을은 부드러운 나선, 병은 사방으로 뻗는 방사, 정은 양파 껍질처럼 겹겹이 퍼지는 동심원입니다. 무는 수평으로 쌓인 산, 기는 수면의 나이테 같은 넓은 동심원, 경은 깎여 나간 거친 덩어리, 신은 한 점으로 모이는 응축입니다. 임은 감싸 도는 큰 흐름, 계는 흩뿌려져 틈새로 스미는 점입니다. 견강부회일지 몰라도, 합이 되는 짝(갑기, 을경, 병신, 정임, 무계)이 모양으로도 맞물리도록 염두에 둔 연상입니다. 선과 면, 유연과 단절, 확산과 응축, 상승과 하강, 면과 점입니다.
내려놓은 꽃들
고르는 일은 내려놓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해를 품은 해바라기는 을사 자리에 내심 품고 있었고, 모란과 연꽃도 아까웠습니다. 결국 을사에는 여름이면 능소화, 겨울이면 눈 속의 복수초를 두었습니다. "더 이상 품지 않습니다"라고 적고 나서야 다음 천간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